“불교미술의 미래는 고정된 형상이나 전통적 도상에 있지 않다. 그것은 흐름 속에 있으며 삶 자체의 움직임 속에 있다.”

유진 왕(Eugene Wang)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7월 5일 열린 아시아종교미술연구소 창립 기념 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불교미술 미래 방향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불교미술의 미래는 무엇인가(What is the Future of Buddhist Art)’를 주제로 진행된 기조연설에서 왕 교수는 “불교미술이 승리와 위기의 지점에 동시에 서 있음”을 진단하며 불교미술의 세계 흐름을 조명했다. 왕 교수는 독일의 주택가 정원, 미국 플로리다 집 앞마당까지 부처상이 넘쳐나는 것을 예로 들며 “불교미술이 세계적으로 영적 실천의 미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서구사회의 부처상 향유는 영성보다는 세속화된 종교적 감수성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종교적 권위에서 벗어나려는 수단으로서 ‘세속화된 영성’ 혹은 ‘영성화된 세속화’가 불상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 등 아시아에서 불상은 전통문화유산으로서 전시되거나 현지 사찰에서 신앙으로 대상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왕 교수는 “불상은 전 세계적인 미적 ‘링구아 프랑카(língua franca·공용어)’가 됐지만, 불교미술은 이제 역사적 기억과 문화유산이 돼 버렸다”면서 “불교미술은 현대에 들어와 제기능을 다한 듯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가 평가한 현대 시기 제대로 된 불교미술 작품은 故백남준(1932~2006)의 작품 ‘TV붓다’(1974) 정도다.

왕 교수는 불교미술의 미래는 더 이상 ‘도상(Icon)’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영국 미학자 허버트 리드의 ‘삶의 리듬(Rhythm of Life)’ 개념을 중심으로, 불상 없이도 불교적 세계관을 시각화한 중국계 화가 아이린 초우(Irene Chou)의 회화 작품 ‘보라색 우주’를 예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초우의 회화는 고전적인 불교 상징 대신 ‘우주적 흐름과 생명 에너지’를 먹과 곡선의 리듬으로 구현함으로써 에너지의 맥동 속에서 자기 자신이 우주가 되는 순간을 그려낸다.

이에 왕 교수는 “초우의 ‘보라색 우주’는 단지 우주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불이(不二)’라는 불교적 세계관의 회화적 구현”이라고 상찬했다.

이어 “이제 불교미술은 형상이나 도상으로 존재하지 않고 과정과 흐름, 관계로 나타난다. 이것이 21세기 불교미술의 가능성”이라며 “정적인 상(像)으로서 불상이 아니라 움직임의 리듬으로 구현되는 불성(佛性), 유기적 흐름으로 재현되는 마음의 상태로 불교미술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행크 글라스만 하버포드 칼리지 아시아 연구 석좌교수의 ‘일본에서의 성불(成佛): 불교 장례의례와 오륜탑형예복만다라’를 기조연설했으며, △아시아종교미술연구소장 정각 스님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아미타삼존불상>(1333년) 복장 발원문과 다라니-고려시대 연기법송의 사용과 티베트불교 복장 규범의 차용’ △신광희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극락으로 가는 여정, 여성, 그리고 한글: 조선조 전기 <안락국태자경변상도>’ △김연미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의 ‘해양 및 영적 지형과 신라불교 건축’ 등의 주제 발표가 이뤄졌다.

한편, 불교미술을 중심으로 아시아 종교 전통 미술을 연구하기 위해 창립된 아시아종교미술연구소는 중앙승가대 명예교수 정각 스님이 초대 소장을 맡았으며, 김연미(이화여대)·신광희(충북대)·엄기표(단국대)·서지민(충북대)·이승혜(동아대)·김현중(전남대)·김자현(동국대) 교수 등 전문학자들이 이사진으로 참여했다.

연구소장 정각 스님은 “불교미술을 비롯한 아시아 종교미술사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면서 “불교미술과 아시아 종교 전통미술 등을 연구하는 학술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