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2-05 02:20
국어 역사 완벽하게 이을 자료 나퉜다 (미디어 붓다)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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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역사 완벽하게 이을 자료 나퉜다”

정재영 교수, ‘원각사 능엄경 권1, 2’의 조선초기 석독구결 가치 평가
“묵서와 교정용 종이가 빼곡히…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이후 최대 사건”

2015-12-26 (토) 11:36

이학종 기자 | urubella@naver.com


“한문을 한글로 풀어서 읽었던 석독구결(釋讀口訣)은 언해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이와 달리 음독(音讀)구결은 한문 학습의 필요성 때문에 현재까지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석독구결의 전통은 오랫동안 잊혀 있었으나 1970년대 문자 석독구결 자료가 발견되고, 2000년대 부호 석독구결 자료가 발견되면서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이번 고양 원각사가 소장한 조선 초기 석독구결의 발견으로 그 의미와 가치가 분명해졌다.”

 

원각사 소장 능엄경에서 조선초기 석독구결을 확인하고 그동안 그 일단을 연구해 발표한 한국기술교육대 정재영 교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발견 당시 전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이후 이번에 확인된 원각사 소장 <능엄경> 권 1, 2의 구결이야말로 가장 가치가 있는 자료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 자료(원각사 소장 능엄경 권1, 2)가 군데군데 단절되어 있던 국어의 역사를 완벽하게 이어주는 귀중한 자료”라면서 “이 자료를 통해 이제 우리는 조선 초기 간경도감에서 경전이 어떻게 번역되고 간행되었는지를 다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문헌은 <능엄경> 경문에 계환(戒環)스님의 풀이를 붙인 책을 1401년에 당시 태상왕이었던 태조의 명에 따라 명필 신총(信聰)대사의 글씨를 판을 새겨 간행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보물 제759호(권1~10) 및 통도사에 있는 보물 제1195호(권9, 10)와 같은 판본이다. 그러나 정재영 교수는 “이번의 원각사 소장본이 훨씬 더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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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결 연구의 권위자 한국기술교육대 정재영 교수가 고양시 원각사 소장 조선초기 '능엄경 권1, 2'의 석독구결을 설명하고 있다. 

원각사 소장 <능엄경> 권1,2에 나타난 조선 초기 석독구결을 주도적으로 연구한 정재영 교수가 지난 12월 23일 오후 3시 동국대에서 ‘조선 초기 석독구결의 발견과 그 의미’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학계, 언론계 등 이 자료의 가치를 알아본 많은 관계자들이 이날 동국대 본관 로터스홀을 가득 메웠다. 정재영 교수의 특별 강연에 앞서 능엄경 소장자인 원각사 정각 스님이 인사말을 했다.

 

“구결 형태가 학술적으로 매우 좋게 기록된 경책이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모처로부터 받았다. 그래서 노력 끝에 원각사에서 소장을 하게 되었고, 이후 동국대 불교학술원 집성팀과 한국기술교육대 정재영 교수의 도움으로 이 책이 매우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안에 신라시대 구결의 양상이 남아 있고, 석독 구결에서 음독구결로 넘어가는 양상이 발견되기 때문에 가치가 매우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이 안에 들어 있는 한글의 형태가 상원사 보다 더 오래된 자료로 확인되면서 구결의 발전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 원각사가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의 참 가치가 밝혀진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사실, 이번 조선 초기 석독구결의 발견은 정각 스님의 원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집성팀의 역할은 이름처럼 자료를 모으고 조사하고 촬영하는 것인데, 보통 자료 소장자들이 공개를 꺼리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모은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 소장자에게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고양시 원각사 정각 스님은 도리어 흔쾌히 소장 자료를 연구할 수 있도록 불교학술원팀에게 제공했고, 이것이 정재영 교수의 연구 및 판독과정을 거쳐 이번의 엄청난 성과를 거둬들이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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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견에 대해 언론 및 학계는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정재영 교수는 특유의 입담으로 특강을 진행했다. 익살과 유머를 적절히 섞은 그의 강연에 참석자들은 매우 생소한 주제와 내용의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구결의 깊은 세계로 빠져들었다. 

 

“사실 조선초 간경도감에서 언해본을 간경할 때의 관련기록이 <실록> 등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간경이라는 것이 숭유억불 시기에 바로바로 간행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왕실에서도 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돌연 당시 부처님 사리 100여과가 발견됩니다. 갑자기 환경이 바뀐 것입니다. 효령대군도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라면서 경전을 번역하자고 제안을 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경전의 언해본이 간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 전체가 다 여기(조선 초기 석독구결)에 들어 있는 겁니다. 기가 막히죠. 흥분이 안 될 수가 있나요? 밤새도록 이 책을 읽었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기가 막힙디다. 일단 언론에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현재의 수준은 앞으로 밝혀질 엄청난 세계의 입구에 살짝 들어간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이번에 나타난 조선초기 석독구결에 세조(世祖)가 간경도감에서 신미(信眉)와 김수온(金守溫) 등이 함께 이야기 한 것들이 나온다. 정 교수의 말마따나 이제 입구를 막 들어간 것이다. 정 교수는 자료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만 사람들은 볼 수 있을 만큼만 보는 것이라며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우리가 어떻게 얼마나 공부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동일한 자료에서 더 많은 것을 알아내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 서두르면 잘못 판독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러면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더 늦어진다”고 경계한 정 교수는 “원효의 저술 중에도 못 찾은 것이 많지만, 앞으로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일본에 있는 문헌 중에 7~8세기 동아시아 사경이 다량으로 나와 있으며,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고려대장경이 왜 그렇게 정확한지도 알 수 있었다고 밝힌 정 교수는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국민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일이 이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없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다행한 일’일 수도. 있다”고 뼈 있는 조크를 날리기도 했다. 

 

“번역은 어려운 것”이라고 전제한 정 교수는 “일본 가타카나의 원전이 신라의 구결이라는 것도 고문헌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앞으로 구결 연구가 활발해지면 정말로 많은 것을 새로이 알아낼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조선 초기 훈민정음 창제시절에 간행된 문헌에는 신라의 석독구결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부분적으로만 일부가 보였을 뿐이었지요. 사실 구결은 크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토를 달거나 훈, 번역을 할 때 조금 차이가 나는데, 개인적인 방언이 나타나는 정도이지 나머지는 거의 베끼는 것이 관행이므로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난 다음에 왜 석독구결이 거의 사라지는 지가 몹시 궁금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이번 <능엄경> 권1,2를 통해 찾아지게 된 것입니다.”


원각사 소장 <능엄경> 권1,2에 기록된 조선 초기 석독구결은 이 시기의 자료가 없어서 생긴 공백을 메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귀중한 자료다. 정 교수는 이 공백을 메꿀 자료를 찾아 무려 20여년을 넘게 헤맸다. 그러다가 고양 원각사 주지 정각 스님에게 부탁한 후 한참 만에 이 자료가 나타난 것이다. 정 교수는 “통도사 소장 <능엄경>에도 토가 있지만, 이번 고양시 원각사 소장본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책들은 다 후세본(後世本)인데다가, 이번에 발견된 원각사 소장본은 인쇄상태도 좋고, 공부했던 흔적이 많이 기록되어 자료적 가치로도 다른 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중요하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두루 알다시피, 옛 학자(사람)들은 현토(懸吐), 즉 토(吐) 하나를 어떻게 다느냐에 따라 파가 달라지고 치열하게 싸웠다. 이런 경향은 유가(儒家)도 불가(佛家)도 마찬가지였다.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문헌에는 당시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여 숙의 끝에 합의를 해 토를 달았다. 물론 당대의 실력자들이 합의해 단 것을 누구도 함부로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간경도감 이전의 구결이 필요했고, 일부 부분적으로는 찾아내긴 했지만 흡족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조선 초기 석독구결이 발견되면서 그 갈증을 씻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원각사 소장 <능엄경> 권 1,2를 통해 그동안의 답답함을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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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원각사 소장 조선초기<능엄경> 권1, 2와 고창 문수사본 유일본인 <법화경> 권1~3, 4~7을 둘러보고 있는 원각사 주지 정각스님과 동국대 불교학술원 원장 정승석 교수.

정재영 교수는 조선 초기 석독구결이 다수 확인된 원각사 소장 <능엄경> 권1,2에 대해 그 가치를 자세히 설명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이 책에 묵서와 교정용 종이가 빼곡히 달려 있다는 점을 비롯하여 ▲1461년에 교서관에서 을해자본(乙亥字本)으로 간행하고 1462년 간경도감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능엄경언해>의 번역에 이용된 저본(底本)으로 보인다는 점 등을 <능엄경언해>에 없는 주석을 썼다가 지운 부분과 <능엄경언해>의 한글주석이 한문이나 구결문으로 되어 있는 부분 등을 근거로 추정, 밝혀냈다.

 

정 교수는 이어 <능엄경언해>의 번역 및 간행 과정을 설명했다. 정 교수는 <능엄경언해>는 세종이 1438년에 <능엄경>을 읽어보고 나서 1449년에 수양대군에게 번역을 명했고, 세조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번역을 못하다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1461년 석가의 분신사리 100여개가 나타난 일과 효령대군의 권유로 구결을 달고 언해사업에 착수한 일, 한계희(韓繼禧), 김수온(金守溫) 등에 명하여 구결에 따라 번역하게 하고 신미(信眉)대사 등의 질정을 받게 한 일 등의 절차와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어 정 교수는 박건(朴健), 노사신(盧思愼), 정효상(鄭孝常), 정빈한씨(貞嬪韓氏, 인수대비) 등이 번역 원고의 수정과 교정작업에 참여한 사실, 왕자인 영순군(永順君)이 예문을 일정하게 했고, 조변안(曺變安)과 조지(趙祉)가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표기한 일, 신미, 사지(思智), 학열(學列), 학조(學祖) 등이 번역을 바로잡았고, 세조가 이루어진 번역을 보고 확정한 일, 전언(典言) 조씨두대(曺氏豆大)가 세조 앞에서 번역을 읽어드린 일 등을 언급했다. 

 

정 교수는 끝으로 이번에 <능엄경> 권1, 2와 함께 발견된 원각사 소장본 <법화경> 권1~3, 4~7도 1417년 전북 고창의 문수사에서 간행한 유일본으로, 이 책에도 묵서로 쓴 음독구결과 석독구결, 한글 등이 일곱 권 전체에 대부분 달려 있어 조사가 이루지는 대로 그 가치가 대단히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