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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03 20:09
방송 작가로서의 소명의식- 이윤수 불자

“ 방송 작가로서의 소명의식 ” -이윤수 불자

 

 

이윤수 불자는 전화할 때마다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방송 중이라 했고, 학교에서 공부 중이라 했고, 운전 중이라 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사냐고 물었더니 “ 이렇게 사는 것이 옳지 않은 줄 알아요.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이기 때문이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윤수 불자는 방송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예술분야 전문 작가이다. 현재 KBS 제1라디오 <지금은 실버시대>와 KBS 월드 <이광용의 문화공감>의 작가 일을 맡고 있다. 최근 대학원 박사 과정을 하느라 일을 3분의 2가량 줄인 것이라 했다. 

방송 작가로 쉽지 않게 18 년이란 세월을 롱런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운이 좋았어요. 당시만 해도 연예 오락 프로그램은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줄섰지만 문화 예술 쪽은 전무했거든요.  그게 오래 갈 수 있었던 비결이었던 것 같아요.”


방송계의 공인된 문화예술 전문작가


원래 <대중 불교>란 잡지 기자로 시작해서 여성지인 <주부생활>에 몸담았는데 여성지로 옮겨갈 때의 입사 조건이 독특하다.

“당시 백담사에 은둔해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취재해오라는 것이었어요. 변장도 하고 별 짓을 다하고 접근했지만 결국 인터뷰에는 실패했죠.” 

  방송과의 인연은 90년 5월 불교방송 개국 당시로 거슬러 간다. 만삭의 몸이었으나 기회를 놓칠까봐 수술해가면서 출산 날짜를 앞당겼다. 불교 방송에서는 <무명을 밝히고> 등의 프로그램에서 활약했고 얼마 전까지 법현 스님의 <불교 음악의 세계>를 맡기도 했다.

93년 불교 방송의 사회자였던 황창원씨의 소개로 KBS <문화살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문화쪽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일을 통해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저한테도 큰 도움이 됐어요. 체질에 잘 맞는 일을 발견한 거죠. 아이들 학비를 대면서도 늘 제 공부를 염두에 두고 살았어요.  언제까지 방송작가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미지수고…. 공부가 제 인생에 있어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됐으면 해요.”

 방송작가 외에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라는 데  바쁜 일정을 틈타 고려대학원 문화 콘텐츠학 박사과정을 진행 중이다. 

“전통 문화와 오늘의 예술을 잘 연결하는 것이 제 목표에요. 예를 들어 ‘만석중 놀이’같이 맥이 끊긴 불가의 문화들을 오늘날 다시 꽃피울 수 있게, 작은 디딤돌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해요.”


“불교는 나의 힘 그리고 든든한 빽”

“할머니는 종가집 종부셨는데 언챙이, 장애인 등 집안 일꾼들에게 늘 자비를 베푸셨어요. 엄마 역시 그런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우이동에서 파주까지 오가며 시어머님 병수발을 불평 한마디 없이 거들어드렸어요.”

이윤수 불자는 할머니와 엄마의 신앙심이 대물림 되어 “태중에서부터 불자였다”고 한다.

“결혼할 때 친정 엄마가 출가한단 말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했을 정도에요. 아이를 가졌을 때도 원효 스님 같은, 이 나라 불교계의 큰 일꾼으로 자라게 해달라고 소망했어요.”

때문에 현재 대학 입학을 준비 중인 큰아이, 고2과정인 두 아이가 출가한다고 하면 기꺼이 호응할 것이라고 한다.

이윤수 불자는 연기자 배종옥, 드라마작가 노희경 등과 함께 방송인이 주축이 된 불자 모임‘ 길벗모임’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게 많단다.

“그동안 ‘잘한다, 잘한다’ 소리에 시건방 떨며 오만 방자하게 살았어요.  정토회의 마음 공  부를 통해서도 얼마나 잘못 살았나 반성하게 돼요. 겸허하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요.”

96년부터 시작된 백팔 배는 2006년부터는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단다. 신심(信心)과 건강을 동시에 챙기자 하는 생각에서 백팔 배를 시작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불교는 늘 나의 힘이고 든든한 ‘빽’이었어요. 2007년 차가 거의 찌그러질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이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됐어요. 그것이 기도의 힘인 것 같아요.”

그런 이윤수 불자에게  “원각사는 또 하나의 친정 같은 곳”이라 했다. 

“아이도 원각사에서 운영하던 룸비니 유치원에 보내고 명덕 스님과는 친구같이 지내며 서로 의지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허망하게 가셨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또한 방송계에서 일하는 불자로서, 자신만의 소명 의식이 있다고 했다.

“초대 손님을 선정할 때 여러 명 중에서 자질이 같다면 불자 쪽을 택해요. 그건 제가 해야 할 사명감이라 생각해요. 또한 진행자의 오프닝이나 클로징 멘트도 ‘언제부터 인연이 되셨습니까?’ 하는 식으로 불교적 색채를 가미하려고 해요.”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도움이 될까’를 늘 염두에 두는 듯, 한마디 한마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엿보이던 이윤수 불자. “나중에 아이들이 출가하고 더 나이가 들면 암자 같은 곳에 사는 것이 꿈”이라 덧붙인다.